도급계약과 근로계약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계약으로 인정되느냐에 따라 근로기준법이 인정하는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현실적으로 많이 문제되는 것을 몇 개만 본다면, 해고예고 절차를 지켜야 하는지,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하는지,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 산재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용역(업무) 미완성에 대한 책임을 누가 부담하는지 등이 있습니다.
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고, 도급계약은 민법상 도급계약이 적용됩니다. 관련법률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데요.
▣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제23조(해고 등의 제한) 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
제27조(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 ①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 ② 근로자에 대한 해고는 제1항에 따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효력이 있다.
▣ 민법
제664조(도급의 의의)
도급은 당사자 일방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같은 직업이라도 사안에 따라서 근로자로 인정받기도 하고 부정되기도 합니다. 결국 근로자인지 여부가 애매한 경우에는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근로자성 판단이 달라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나의 경우에는 어디에 해당하는지 판단해보시길 바랍니다.
1. 도급계약과 근로계약의 일반적인 구별기준
대법원 판례가 설명하는 도급계약과 근로계약을 구별하는 일반적인 기준을 알아야 하는데, 근로자라고 인정받으려면 계약서의 형식과 상관없이, 그 실질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실질이라 함은,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사용자와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데, 종속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도 나름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1) 업무내용이 사용자가 정한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칙 등의 적용을 받는지 여부
2)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 감독을 하는지
3)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4)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 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5)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6)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7)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8)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9)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
10)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위 기준들에 따라 판단해서 사용자와 종속적인 관계인지 여부를 판단하게 되고, 이에 따라 궁극적으로 근로자냐 아니냐를 판단하게 됩니다. 주의할 점은 위 기준들의 중요도가 동등한 것은 아닙니다. 기본급 여부,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여부, 사회보장제도에 관하여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여부 등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서 근로자가 아니라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2. 구체적 사건에서 판단해보기
가. 갑이 근로자라고 인정한 사건
- 갑과 회사가 프로그램 개발 업무에 대해 용역계약을 체결하였고, 구체적으로 회사의 APP 팀에서 갑에게 업무를 부여함
- 근로장소는 회사가 지정하는 장소이고, 근무시간은 09:00-18:00 임
- 회사의 APP 팀의 팀장이 갑에게 직접 업무에 대해 지휘, 명령함
- 갑은 지휘, 감독자에게 업무 진행 현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할 것을 지시받았고,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회사의 취업규칙,
업무기준 및 근무수칙 등의 적용을 받음
- 갑의 업무 수행에 필요한 시설 및 장비는 회사가 제공함
- 갑이 제3자를 고용해서 업무를 대행하도록 할 수 없다는 내용기 기재된 회사 명의의 사실확인서가 존재함
- 갑은 업무의 대가로 매월 말일에 월 450만원의 고정급을 지급 받았고, 특정한 프로그램의 개발 여부 또는
그 진행정도에 따라 회사로부터 지급받는 금액이 달라지지 않았음
- 갑이 특정기간 동안(약 8년) 매년 2개 이상의 회사에 용역을 제공하고 이를 사업소득으로 하여 소득세를 신고한 사실이
있으나, 문제되는 회사와 계약기간 중에 중복하여 다른 업체에 용역을 제공한 자료는 없음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서, 세무서가 갑을 사업자로 보고 갑의 소득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부과한 사건인데, 1심 판결에서 부가가치세가 부과된 소득과 관련해서 갑이 받은 소득은 사업소득이 아니라 근로자로서 받은 임금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위 내용을 보면 근로자로 보기에 애매한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갑이 매년 2개 이상의 회사에 용역을 제공하였다는 점, 갑 스스로 사업소득으로 하여 종합소득세를 신고하였다는 점 등은 갑이 프로그램 개발 업무를 독립된 사업자로서 수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더 부합하는 근거이긴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주의점으로 설명한 것처럼, 모든 기준들에 대해 검토한 후 결국 양 당사자(근로자와 회사)의 경제, 사회적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위 사건과 달리 같은 프로그램 개발업무인데도 프리랜서(도급계약)로 본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2. 을이 근로자가 아니라고 본 사건
- 회사와 을은 구두로 계약을 체결함
- 회사가 을을 채용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을의 채용에 대해 '업무의 내용과 기간(2개월)을 명시'한 문서가 존재
- 을의 업무는 회사가 공공기관으로부터 발주받은 용역계약에 따른 특정 업무를 약정 기한까지 완성하는 것으로
특정되어 있음
- 을이 계약기간 도중 위 용역계약에 따른 특정 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수행한 사실은 있으나, 이에 대해 회사가 별도의 비용을 을에게 지급함
- 을은 사업소득세를 납부하였고,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았음
- 회사가 을에게 매월 고정급으로 월 650만원을 지급하였으나, 회사 내부적으로 을에게 지급한 금액을 '개발비'로
정리하였고, 을의 임금은 회사 내부 임금체계와 전혀 달랐음(을은 회사의 대표이사보다 월급을 많이 받았음)
- 회사의 다른 직원들은 모두 근로계약서로써 '연봉계약서'를 작성하였으나, 을은 과거에 같은 회사와 협업한 경력이
있어서 회사가 을과 별도의 기술용역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음
- 을은 특정 장소에서 특정 시간에 업무를 수행하였음
- 을이 업무를 수행한 개발부 팀장이 을에게 업무수행 결과를 점검하고 작업을 지시한 사정이 있음, 개발팀 인력들로
구성된 단체 채팅방에 근태를 신경쓰라는 메세지 등이 있었음
- 을의 직급은 '차장'으로 대우받았음
위 사건에서 판례는 을에 대하여 근로자가 아니라 프리랜서(사업자)로 보았습니다. 이 사건의 경위를 살펴보면, 회사가 을한테 문자로 계약해지를 통보하자 을이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면서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고 지노위에서 구제신청을 각하하자, 을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고 중앙노동위원회가 재심신청을 기각하는 판정을 하자, 을이 재심신청 기각판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건입니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법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을은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위 사건에서도 을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것에 더 부합한 사실관계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을이 회사의 특정 장소, 특정 시간에 업무를 수행한 사실이나, 개발부 팀장이 을의 업무수행 결과를 점검하고 작업을 지시한 사정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위 사건에서는 사실관계를 사회, 경제적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을은 회사의 다른 근로자와 다른 처우를 받았고 근로자로 인정하는 것보다 독립된 사업자로서 특정 업무 수행을 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정리하면, 도급계약과 근로계약을 구별하는 기준이 모호해서 사건마다 판단이 어렵긴 합니다.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 명확한 사건은 분쟁까지 안가고, 결국 애매한 사건에서 분쟁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결국 수행해야 할 업무의 특성이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업무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기준을 보면, 1) 특정 업무를 수행할 의무만 부담하는지, 아니면 2) 수행할 업무를 일의 종류나 범위로 정해서 회사의 지시에 따라 그 밖의 업무도 수행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가 중요합니다.
1)에 해당한다면 근로자가 아니라 도급계약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고, 2)에 해당한다면 설령 계약서의 명칭이 근로계약이 아니더라도 근로자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위 두개의 사건은 프로그램 개발업무라는 비슷한 사실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근로자를 인정했고 다른 하나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결국 구체적인 사건마다 회사와 근로를 제공한 자 사이에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경위부터 모든 사실관계를 하나씩 다 따져보고 나에게 유리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합니다.
스스로 판단해서 다투다가 회사로부터 손해배상청구를 당하거나 부가세를 납부하는 불이익을 입을수도 있고, 회사도 근로자로 잘못 인정되어 해고기간 동안 지급안한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손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판단하기 애매하면 전문가와 진행하는 것이 소탐대실을 막는 방법입니다.
카카오톡 같은 온라인 메세지로 명예훼손 행위를 하면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것이므로 형법상 명예훼손이 아니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가 됩니다. SNS나 인터넷을 이용한 범죄가 증가하면서 이런 내용은 많이들 알고 계시죠.
단체 채팅방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쓰면 명예훼손죄로 처벌받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단체 채팅방에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나의 프로필 상태 메세지에 글을 쓴 것도 혹시 문제될 수 있을까요. 언뜻 생각하면 프로필 상태메세지까지 규제하는 것은 과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실제로 문제된 사안을 보겠습니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보면, 피고인 A는 학부모이고 피해자 B는 초교 3학년 4반에 다니는 피고인 자녀의 친구입니다. 피해자 B가 피고인 A의 자녀를 괴롭히자 피해자B가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에 회부되었고 그 위원회에서 피해자 B에 대하여 '피해학생(A의 자녀)에 대한 접촉, 보복행위 금지' 등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러자 A가 자신의 카톡 프로필 상태메세지를 '학교폭력범은 접촉금지!!!(주먹 그림 세개)' 라는 내용으로 설정한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A가 B의 이름을 특정하지도 않고 자신의 프로필 상태메세지에 글을 쓴 것 뿐인데 이것이 B에 대한 명예훼손이냐가 문제된 이유는,
A는 3학년 4반 학부모들이 가입되어 있는 단체카톡방에 들어가 있었고, 당시 B에 대한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가 개최된 전후 사정 등을 모두 알수 있는 상황이므로, A가 카톡 프로필의 상태메세지에 쓴 내용은 학부모들 단체카톡방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고, A가 쓴 '학교폭력범은 접촉금지' 라는 내용을 보고 3학년 4반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B에 대한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의 처벌 내용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A가 자신의 카톡 프사 상태메세지에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의 처분내용을 적시함으로써, A가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B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피해자 측 주장입니다.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1심에서는 A의 카톡 프사 상태메세지에 의하여 단톡방에 등록된 3학년 4반 학부모들은 피해자 B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 수 있고, 피고인 A한테 단순히 일반적인 학교폭력방지 목적이라기보다는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인정하여 명예훼손 유죄를 인정하였습니다.
2심도 피고인 A가 카톡 프로필 상태메세지에 쓴 글을 게시한 경위와 동기, 그 게시글의 구체적인 내용과 표현방법, 게시기간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A가 피해자 B를 비방할 목적으로 피해자 B에 대한 사실을 공연히 적시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을 인정하여 유죄가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결과가 바뀌었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 A가 쓴 글인 '학교폭력범은 접촉금지!!!' 라는 글에 관하여 다르게 판단하였습니다.
① 먼저 A가 특정인을 '학교폭력범'으로 지칭한 것이 아니고, ② A가 '학교폭력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고 하여 실제 B가 일으킨 학교폭력 사건에 관해 언급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③ '접촉금지'라는 어휘는 통상적으로 '접촉하지 말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되므로 A가 쓴 글만으로는 B에게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에서 내려진 처분의 내용(피해학생에 대한 접촉의 금지)이 B와 같은 반 학생들이나 그 학부모들에게 알려졌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A가 카톡 상태메세지에 쓴 글만으로는 B에 대한 학폭대책 자치위원회의 처분내용이 공개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이 명예훼손이 안된다고 판단한 근거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A가 상태메세지를 바꾸면 3학년 4반 학부모들은 단톡방에서 A의 상태메세지를 보고 B에 대한 자치위원회 처분내용을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B에 대한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가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같은 반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모를리도 없고요. 그렇기 때문에 1심과 2심에서는 명예훼손을 유죄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쓴 것이 아니고 단순히 자신의 프로필 상태메세지에 글을 썼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이라고 본다면, 그리고 그 사실이 허위도 아니고 사실적시라면 그러한 행위까지 명예훼손이라고 보아 유죄로 판단해서 전과자를 만드는 것이 타당하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표현의 자유도 명예훼손이 보호하는 인격권처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해당하고 민주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강하게 보호할 것이 요청되기 때문이죠.
현실적으로 카톡 프사 메세지에 쓴 글이 그 글을 쓴 시기, 게시기간 등 타이밍에 비추어 무엇을 암시하는지 알 수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명예훼손으로 처벌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결국 의견이 대립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명예훼손이라는 주장에 부합하는 근거도 있고,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주장에 부합하는 근거도 있습니다.
판례는 명예훼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사실을 드러내어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띠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러한 요건이 충족되기 위해서 반드시 구체적인 사실일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특정 표현에서 그러한 사실이 곧바로 유추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가 특정되었다고 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내용을 주위사정과 종합하여 볼 때, 그 표현이 누구를 지목하는가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즉, 명예훼손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 사실적시'와 '피해자 특정'이 중요한 요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구체적 사실적시가 없다고 보아 명예훼손을 부정했지만 이 사건은 피해자의 특정을 문제삼을 여지도 있습니다.
결국 현실에서 명예훼손이 문제된다면, 정보통신망을 통한 행위든 실제 오프라인에서 발생한 행위든, 명예훼손 피해를 당한 사람과 고소를 당한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그에 맞는 근거를 들어서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명백한 명예훼손 범행은 다툴 여지가 없으나, 현실은 명백한 범행보다는 애매모호한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명예훼손 법리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겠죠.
생리도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리전증후군인 '병적절도'로 진단을 받기도 하는데, 생리기간에 순간적인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절도행위를 한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생리도벽을 주장하면 심신장애라고 판단하여 절도죄로 처벌할 수 없을까요.
생리도벽과 관련된 사례가 많지는 않습니다. 결국 생리도벽이라는 것은 심각한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것으로서, 생리도벽 외에 우울증 기타 정신병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에, 설령 심신장애라고 판단받더라도 생리도벽 그 자체만으로 심신장애라고 보아 무죄를 받는 것은 어렵습니다.
생리도벽에 의한 범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사례 1.
- 약 34년에 걸쳐 15회에 걸쳐 절도 등의 범행을 하여 기소유예처분, 소년부송치처분, 유죄 판결 등을 받은 전력 존재
- 피고인의 절도행위에 대한 진술
절취할 생각이 없었다고 부인하면서, 절도범행을 계속 저지르는 이유에 대해 "저도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거나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훔치고 싶어 훔쳤습니다." 또는 "교도소에 갔다 오면 또 뭔가 마음이 이상해지면서 남의 물건에 욕심이 생기고 하였습니다. 저도 이상하게 마음이 울렁거리기만 하면 집에서 나가고 싶고, 나가보면 이상한 마음이 들어 물건을 훔치고 하였던 것입니다."라고 진술
- 피고인의 이전 범행에 대한 법원의 판단 중에 생리를 원인으로 인정한 판결도 존재
피고인은 생리 때만 되면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나고, 위 범행 당시에도 생리중으로서 절도의 충동이 발동하여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는데 그 당시 피고인의 심리상태는 그 충동으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던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사례 2.
- 약 18년에 걸쳐 5~10회에 걸쳐 절도 등의 범행에 대한 기소유예처분, 유죄판결 등을 받은 전력 존재
- 피고인의 절도행위에 대한 진술
"저도 모르게 남의 것만 보면 가지고 싶습니다. 제 마음을 저도 모르겠습니다.", "시장에 나가서 여자옷만 보면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나도 모르게 손이 가서 훔치게 됩니다. 저도 제 마음을 어떻게 자제할 수가 없습니다.", "나쁜 짓을 안한다고 다짐을 하는데 월경이 나오면 귀에 혹이 나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충동이 생기는데 내 마음이지만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번 죄를 저질렀는데 저도 제 마음을 모르겠어요. 안 그런다고 마음을 굳게 다짐하고 저희 식구들도 제가 이상한 물건만 있으면 신경을 많이 쓰고 해서 마음을 굳게 다짐을 하는데 이번에도 왜 그랬는지를 정말 모르겠어요. 병원에서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당장 죽는 병이 아니고 집안에 쓸 데도 많다 보니까 치료를 못받았습니다." 라는 등으로 진술
위와 같은 사안에서 대법원 판례는 피고인의 절도범행에 대하여 생리도벽으로 인한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유죄판결을 선고한 원심판결이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파기하였습니다.
대법원 판례가 설명한 이유를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여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현상은 정상인에게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일로서,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성격적 결함을 가진 자에 대하여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고 법을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기대할 수 없는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충동조절장애와 같은 성격적 결함은 형의 감면사유인 심신장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봄이 상당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물을 변별할 수 있는 능력에 장애를 가져오는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이 도벽의 원인이라거나 혹은 도벽의 원인이 충동조절장애와 같은 성격적 결함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매우 심각하여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로 인한 절도 범행은 심신장애로 인한 범행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99. 4. 27. 선고 99도693, 99감도17 판결 참조).
위에서 본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생리 기간 중에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정도의 심각한 충동조절장애에 빠져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 발동하여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을 상실하거나 미약한 상태에서 저지르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되므로, 원심으로서는 전문가에게 피고인의 정신상태를 감정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과연 이 사건 범행 당시 피고인의 정신상태가 생리의 영향 등으로 인하여 그 자신이 하는 행위의 옳고 그름을 변별하고, 그 변별에 따라 행동을 제어하는 능력을 상실하였거나 그와 같은 능력이 미약해진 상태이었는지 여부를 확실히 가려보아야 하였을 터임에도 그러하지 아니한 채,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거나 미약하였다고 보이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고 만 것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고, 심신장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경우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그 이유 있다. (대법원 2002. 5. 24. 선고 2002도1541판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절도)] 판결 참조).
생리도벽을 인정한 실제 사안과 대법원 판례의 판결이유를 보면, 절도 범행에 대하여 내가 생리전증후군 때문에 순간적인 충동에 의하여 심신장애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즉 생리도벽을 주장하는 경우 그 주장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위 사례처럼 생리도벽으로 인정받으려면 장기간에 걸쳐 충동조절장애를 겪고 있어서 사물을 변별할 수 있는 능력에 장애를 가져올 정도로 충동조절장애와 같은 성격적 결함이 매우 심각하여 그것이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정도여야 생리도벽 주장이 인정되어 심신장애로 인해 책임능력이 조각될 수 있습니다. 즉, 현실적으로는 이와 같은 책임조각 주장이 인정되어 무죄를 선고받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죠.
그러나 심신장애 주장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만약 정말 심각한 충동조절장애에 의한 범행이라면 그것이 절도가 아닌 다른 범행일지라도 심신장애 주장을 할 것인지 자체는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