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사람과 성관계를 했는데 그 후 성범죄로 고소(당)하는 경우는 거의 비슷한 모양새를 갖고 있습니다.

남녀가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성관계를 하였는데 그 후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고 남자를 고소하는 것입니다. 실제 남자가 강제로 여자를 간음한 것이 맞다면 당연히 (준)강간죄로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이런 사건에서 억울하다고 하는 경우는 남자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하는 사건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을 강간하거나 강제추행 하면 형법상 준강간죄 또는 준강제추행죄가 성립합니다. 준강간죄 또는 준강제추행죄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준강간죄는 강간죄와, 준강제추행죄는 강제추행죄와 똑같이 처벌받습니다.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란 쉽게 말해서 술에 취해 있거나 약물 복용, 수면 중에 있는 경우 등을 생각하면 됩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건은 술에 취한 여자와 성관계한 경우입니다.

이런 사건에서 증거는 피해자인 여자의 진술만 있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피해자가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남자 입장에서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남자가 주장할 수 있는 것으로 블랙아웃(black out)이 있습니다. 흔히 필름이 끊겼다고 말하는 블랙아웃 상태의 의미는 '알코올이 임시 기억 저장소인 해마세포의 활동을 저하시켜 정보의 입력과 해석에 악영향을 주지만, 뇌의 다른 부분은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현상으로, 이 경우에는 단지 행위 당시의 상황을 사후에 기억할 수 없을 뿐, 행위 당시에 심신상실의 상태에 이른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설명됩니다.

즉, 여자가 술에 취해 기억이 안난다고 주장하는 경우, 남자는 여자가 일시적 기억상실증인 블랙아웃 증상으로 나중에 기억을 못하고 있지만, 행위 당시에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블랙아웃 상태를 인정하여 결국 무죄가 선고된 실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피해자는 자신이 모텔 객실의 욕조에 나체로 누워있고, 옆에는 남자 A가 나체로 서 있었던 장면부터 기억이 난다고 진술을 하였는데, 1심에서는 준강간죄 유죄를 인정했지만 2심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상고기각되어 무죄가 확정된 사건입니다(서울고등법원 2014노3517).

이 사건에서 A가 유죄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피해자가 사건 당시 블랙아웃 증상이었다고 주장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즉, A가 술에 취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침대에서 간음을 하고 그  후 피해자를 욕조 안에 눕혔으며, 그 때부터 기억이 난다는 피해자의 주장보다는,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고 스스로 욕조로 걸어 들어갔다는 A의 주장이 더 신빙성 있다고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준강간죄를 포함하여 성범죄는 피해자인 여자의 진술이 결정적 증거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것을 뒤집을 객관적 증거가 없는 이상, 방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이므로, 피해자가 음주 또는 약물 등으로 피해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여 주장 입증하면 피고인이 억울한 처벌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즉,성범죄 사건은 피고인 혼자 방어하는 것이 무척 힘들고 변호인의 조력이 가장 필요한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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