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상가를 임대수익을 기대하고 분양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가를 분양받는 것에는 다양한 리스크가 존재하는데, 개발 일정과 관련해서는 상가가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제대로 신축되지 못하고 일정이 지연되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대개 시행사가 개발 도중에 도산 절차에 들어가거나 시공사의 자력이 약한 경우, 분양이 제대로 안 되어서 분양대금이 제때에 납입되지 않아 공사대금 지급이 지연됨에 따라 공사일정도 늦어지는 경우 등이 많이 발생하는 사유입니다.
위와 같은 사유가 발생하거나 또는 그 밖의 사유로 분양계약자가 분양계약을 해제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그러나 한 번 분양계약을 체결하면, 분양계약을 해제하기까지 난관이 많은데요. 먼저 해제권이 발생하느냐가 문제됩니다.
나한테 분양계약상 해제권이 발생해야 하는데, 달리 말하면 분양계약서에서 정하고 있는 해제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계약서 검토 자문을 진행해 보면, 분양계약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계약서에서 정하고 있는 약정 해제 사유가 발생하여 그 경우에 딱 들어맞는 일은 오히려 드뭅니다. 즉, 계약에서 정한 해제사유에 해당하는지 부터 의견 대립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분양계약상 해제사유로 인정받는 것보다, 분양자와 분양계약자 쌍방이 해제에 합의하는 합의해제로 계약관계를 종료하는 경우가 많은데, 합의해제는 쉽게 말하면 계약서에서 미리 정하고 있는 해제사유가 있든 없든, 쌍방 당사자가 계약관계를 종료하기로 합의하는 것입니다. 해제사유가 있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해제하는 것이므로 해제를 원하지 않는 당사자 측에서는 해제에 합의해주는 대신에 계약금과 중도금 일부를 포기하라고 한다든가 어떤 조건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해제를 원하는 측에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분양계약을 해제하는 것이 유리하면 합의해제는 성립하게 됩니다.
최근 판례 사안에서, 신축상가 중 6개 점포에 관한 분양계약을 체결한 자가 시행사와 분양계약을 합의해제하면서, 계약금과 개발비는 포기하고 중도금 중 본인 부담금만 반환받기로 약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 사건의 구조를 살펴보면,
1) 상가를 신축해서 분양하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시행사가 시공사, 부동산신탁회사와 자금관리신탁계약을 체결하였고,
2) 부동산신탁회사가 부동산신탁사 명의로 개설한 분양수입금 관리계좌로 분양대금을 포함하여 분양사업과 관련된 수입금 일체를 입금받아 관리하기로 하고,
3) 분양 개시 후 관리계좌에 입금된 수입금의 인출절차는 시공사의 동의서를 첨부한 시행사의 서면 요청에 따라 부동산신탁사가 인출하기로 정하였습니다.
4) 그리고 이 사건은 분양계약자가 계약금, 개발비, 중도금을 납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5) 그런데 6개 점포에 관해 분양계약을 체결한 원고가 시행사와 분양계약을 합의해제하면서, 계약금과 개발비는 포기하고 중도금 중에서 본인 부담금만 반환받기로 한 것입니다.
6) 이에 시행사가 시공사한테 분양계약이 해제되었음을 알리면서 해약금(본인 부담금에 해당하는 중도금)을 관리계좌에서 인출해 달라는 통지서와 함께 관리계좌 인출결의서, 계약해지신청서, 분양계약서 사본 등을 시공사한테 발송하면서 해약금 인출에 대한 동의를 요청했습니다.
7) 그러나 시공사가 분양계약자의 해약금 인출에 동의하지 않은 채 위 서류를 받고 약 5개월 후까지 관리계좌에서 자신의 공사대금을 변제받으려고 지속적으로 분양대금을 인출해서 수령했고,
8) 결국 분양계약자는 관리계좌의 잔고가 부족하게 되어 해약금을 받환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9) 이에 분양계약자가 원고가 되어 시공사를 상대로 부당이득금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결론을 살펴보면,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시공사가 분양계약자의 해약금반환청구권을 침해하였다고 보아 제3자 채권침해를 인정하여 불법행위가 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시공사는 분양계약자에게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해약금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2021. 6. 30. 선고 2016다10827판결).
일반적으로 채권은 물권과 달리 배타성이 없어서 제3자가 채권을 침해하더라도 위법성이 쉽게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시공사가 분양계약자의 해약금반환청구 채권을 침해하였다고 보았고 그것이 위법하기 때문에 불법행위가 되어 해약금에 상당하는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것이죠.
주의할 점은, 이 사건은 자금관리신탁계약을 체결한 사건인데, 시공사의 공사대금이 분양계약자에 대한 관계에서 법률상 우선변제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공사의 행위가 부동산 선분양 개발사업 시장에서 거래의 공정성과 건전성을 침해하고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경제질서를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라고 판단한 것이고, 분양계약자는 시공사의 위와 같은 위법행위로 말미암아 시행사로부터 이 사건 해약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본 것이죠.
상가를 포함한 신축부동산 개발사업은 분양계약을 한 번 체결하면, 수익을 내기까지 여러 리스크가 존재하고, 일단 체결된 분양계약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납부한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전부 또는 일부를 포기한다는 각오가 아니면 분양계약을 해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요.
계약 자체를 해제하는 것은 내가 해제 통지를 하면 가능하지만, 돈을 돌려받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시행사가 분양계약의 당사자이므로 해제 상대방은 시행사이지만, 대개의 경우 분양대금은 신탁사 명의의 관리계좌로 입금되어 있기 때문에 시행사가 임의로 분양대금을 반환해줄 수 없습니다.
관리계좌에 입금된 돈을 반환하려면 시공사나 대주의 동의가 필요하고, 최종적으로 신탁사가 인출 절차를 진행해줘야 반환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양계약자가 납부한 분양대금에 대해서 보호가 굉장히 미흡한 것이 현실인데, 판례를 보면 과거보다는 분양계약자의 분양대금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아주 조금은 바뀌고 있다고 보입니다.
따라서 여전히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은 아니지만 분양계약자 입장에서는 분양대금을 반환받고자 한다면, 관련 계약들, 관련 법률들, 관련 판례 등을 모두 신중하게 검토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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